[GeekNight 2024] 인지과학 연구로 증명된 학습 보조 도구 Anki: 10배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저는 삶의 밀도를 높이는 데 관심이 무척 많아요. 오늘 주제인 Anki라는 도구가 제가 새로운 걸 배우고 익히는 데, 나아가 삶의 밀도를 높이는 데에 큰 도움을 주고 있어서, 이녀석을 소개해보고 싶어서 발표를 신청했어요.
단순히 이런 도구가 있다, 를 넘어 이걸 어떻게 써야 더욱 잘 쓰는 건지 말씀드려볼게요.
'똑똑한' 플래시카드 앱 Anki
Anki는 쉽게 말하면 똑똑한 플래시카드 앱이에요. 어릴 때 많이들 해보셨을텐데, 비오는 걸 앞면으로 보여주고 Rainy!를 맞추면 뒷면을 보여주는, 이런 게 플래시카드잖아요.
이런 플래시카드를 소프트웨어로 만들어 여러 기능을 추가한 게 Anki입니다. 수식, 이미지, HTML 등 다양한 인풋 포맷을 지원하고, 알고리즘에 따라 학습 주기를 조절하는 게 특징이에요.
앱은 유료인데, PC 버전은 오픈소스로 무료고요. 본인이 원하는 플러그인을 추가할 수도 있어요.
Anki 말고도 다른 플래시카드 앱이 많지만 저는 Anki만 써봤어요. 그래도 제가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다른 플래시카드 앱에도 통용되는 내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Anki에 내포된 학습 원리
먼저 안키가 왜 학습에 좋은지 간단히 소개해볼게요.
왼쪽 그래프는 어빙하우스라는 심리학자가 발견한 망각 곡선이라는 건데요. 어빙하우스 이후로 인간이 특정한 지식을 장기기억에 집어넣는 데 몇 번이나, 어떤 주기로 노출해주면 되는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어요. 이걸 알고리즘으로 만든 걸 분산 연습 체계(Spaced Repetition System)라고 부르고, Anki는 이 알고리즘의 오픈소스 버전을 씁니다.
각 카드마다 '아 이게 뭐더라?' 를 생각해보고 답을 본 다음 내가 얼마나 이걸 잘 기억했느냐를 응답하면, 알고리즘에 따라 카드의 학습 주기를 조정해주는 방식이죠. 다음 복습 주기는 계속 늘어나는데, 저는 스케줄이 10년 뒤로 잡힌 카드도 있더군요. '다시'를 누르면 알고리즘을 리셋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고요.
안키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시험 유형을 지원합니다.
좌측은 아까 보셨던 Basic. 질문이 있고 답을 생각하는 형태입니다.
우측은 Cloze, 빈칸 채우기예요. 왼쪽처럼 빈칸이 뚫려있으면 나머지 문장을 힌트로 안쪽 내용을 맞추는 겁니다. 이러한 빈칸 채우기는 인지 부하를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작업기억을 더 잘 활용하여 학습 효과를 강화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해요.
그리고 이 분산 연습과 연습시험은 던로스키라는 심리학자의 연구에서 가장 효과가 큰 학습법이라고 밝혀진 두 가지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Anki를 그냥 영어 단어장처럼만 쓰는 분들은, 여기 '효과 중간'이라고 써있는 섞어서 연습하기, 자문하기, 연결짓기 3가지의 효과는 누리기가 쉽지 않아요. 다양한 주제를 Anki에 넣는다면 섞어서 연습이 어느정도 되겠지만, 그 이상의 능동적 활용까지는 안 가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참고: 던로스키 연구의 학습법 설명과 효과
효과 큼
- 분산 연습(Distributed Pratice): 계속 연습하는 게 아니라 연습하는 시간 사이에 적절한 간격을 둠
- 연습 시험(Pratice Testing): 배울 자료에 대해 연습시험을 치거나, 배운 자료에 대해 셀프 시험을 침
효과 중간
- 섞어서 연습(Interleaved Practice): 한 학습/연습 세션 내에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다룸
- 자문해서 정교화(Elaborative Interrogation): 이 사실이나 개념이 왜 말이 되는지 설명을 만들어냄
- 이미 아는 정보와 연결(Self-Explanation): 새 정보가 내가 이미 아는 정보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생각하거나, 문제 해결의 중간 단계를 생각하냄
효과 작음 (효과가 생기기 위해 조건이 더 필요함)
- 밑줄 긋기(Highligting / Underlining): 자료 읽으면서 중요해 보이는 부분에 강조 표시하기. 초보자는 뭐가 중요한지 몰라서 밑줄을 너무 많이 치거나 너무 적게 침.
- 여러 번 읽기(Rereading): 너무 수동적이고 반복적임. 기억을 조금 더 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뇌를 쓰며 더 깊은 이해를 만들기는 어려움.
- 요약하기(Summarization): 다양한 길이로 요약 쓰기. 초보자는 요약 기술이 부족하고 뭐가 중요한지 모름.
- 키워드 연상법(Keyword Mnemonic): 키워드와 머릿속 이미지로 연상하기. 단순한 사실에는 잘 동작하지만 복잡하거나 추상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초보자가 만들기 어려워서 덜 실용적임.
- 텍스트를 시각화(Imagery for Text Learning): 텍스트에 대해 읽거나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이미지 만들기. 키워드 연상법과 유사하게, 자료 형태에 의존적이며 추상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만들기 어려워서 덜 실용적임.
핵심은 능동성에 있다. 선생이 학습자료 안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강조하여 어디를 어떻게 여러 번 읽어야 할지 가르쳐주고, 요약 기술을 훈련시키고, 언제 키워드 연상법과 시각화를 활용할지 안내해준다면 위 방법들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이제부터 Anki를 더 잘 활용하는 방법을 IPO라는 정보처리 이론을 차용해서 말씀드볼게요.
나의 Anki 활용법 - Input
먼저 Input 단계. 언제, 무엇을 넣는가인데요.
언제 넣는가
우선 저는 뭔가 호기심이 생기면 GPT와 문답 후 정리해서 넣는 게 가장 많아요. 특히 A와 B의 차이가 뭐냐, 같은 질문을 많이 해요. 우측 카드는 지하철에서 이효리가 음료 광고한 거 보면서 궁금해져서 찾아본 거였어요.
중요한 회고를 하고 나서 느낀 점을 통째로 넣어둔 적도 꽤 있어요. 이건 모든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자주 들여다보는 장치로 활용하는 것에 가깝긴 합니다. 이 카드는 올해 초에 개인사업자 내면서 우왕좌왕 고생했는데, 다음에는 비슷한 고생을 하기 싫어서 만들었어요.
좀 더 일반적으로는, 뭔가 읽었거나, 유의미한 이벤트를 겪었거나, 공부한 뒤 정리할 때도 있고요. 아까도 보여드렸던 이 카드는 김창준님의 인프런 강의 보고 추가한 거였어요.
그리고 주식투자 같은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고 싶을 때에도 쓰고, 제가 잘했던 행동을 나중에 반복하고 싶을 때에도 씁니다.
이런 것들이 제가 새 안키 카드를 만드는 트리거예요. 이런 트리거를 삶에 설치해둔 덕분에 꾸준히 새 카드가 추가됩니다.
무엇을 넣는가
그리고 질문의 답만 적는 게 아니라, 여러가지 메타데이터를 더 넣습니다.
내가 어떤 시점에 왜 이 카드를 추가했고, 출처는 어디였고, 더 잘 기억하기 위한 장치는 뭐고,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이 지식을 나 스스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를 들어 '근의 공식'을 외우고 싶다고 하면, 공식 자체만 넣어두는 대신 유도하는 방법, 공식을 만든 사람, 한계점, 연습문제 같은 걸 다 넣어둘 수 있겠죠.
그리고 여기서도 트리거를 생각해요. 다음에 이 카드를 보면 이걸 해보자. 내가 이 지식을 어떤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을까? 이것도 카드로 추가할까? 처럼요.
나의 Anki 활용법 - Process
그다음은 Process 단계.
복습하면서, 즉 질문과 답변을 보면서 무엇을 하는가, 인데요.
제가 하는 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카드를 계속 살아있게 만드는 거예요. 난이도를 올리고 내리고, 지우고, 쪼개고, 내용을 보강하고. 단순한 예로, 이 오른쪽 카드가 너무 쉽게 느껴지면 '5가지'를 빼버리고 '좋은 모임을 만들기 위한 요소들'처럼만 쓰는 식이죠.
어차피 미래의 내가 지속적으로 개선해줄 걸 알기 때문에, Input 단계에서 대충 집어넣어도 큰 부담이 없어요. 이게 저만의 Anki 사용 마인드셋이자, 피드백 구조를 설계한 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나의 Anki 활용법 - Output
마지막으로 Output. 물론 호기심을 해결하거나 단순히 지식을 얻는 걸로도 즐겁지만, 저는 결국 이 지식을 어딘가 써먹어야 의미가 있다고 보거든요.
저에게는 글감을 얻고, 남에게 도움을 주거나, 스스로 도움을 받는 데 Anki가 큰 역할을 합니다. 이렇듯 저에게 가장 소중한 일상 도구 중 하나인 Anki를 여러분도 이번 기회에 찍먹해보시길 권해요.
그런데 이 모든 게 작동하려면 어떻게든 복습을 해야 하잖아요. 저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Anki 복습을 하진 않습니다. 대신 화장실에 가거나, 대중교통을 타거나, 산책하거나 할 때, 즉 짜투리 시간을 트리거로 Anki 앱을 켜는 습관을 들였어요. 그래서 굳이 유료인 Anki 모바일 앱을 구매했고요. 여러분도 찍먹하실거면 모바일 앱으로 해보시길 추천합니다.
내년에는 이렇게 제가 Anki 쓰는 방식을 플러그인이든, GPTs든, 앱이든 간에 뭔가 제품으로 만들어보는 게 소소한 목표입니다. 만들고 나면 Show GN에도 올려볼게요.
감사합니다. 네트워킹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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