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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세계, 그리고 계: 전문성 향상을 위한 3가지 단어

전문성 향상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경계'를 탐구하고, '세계'를 확장하며, '계'를 통해 실천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전문가 되기, 전문성 키우기.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고, 저도 들으면 가슴 뛰는 말이기도 합니다. 산책을 하다가 문득 제 전문성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 단어 3가지가 모두 "계"라는 글자로 끝나는 걸 깨달아 재밌었는데요. 오늘은 이 단어들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1) 경계: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는 능력, 전문성의 초석

인지심리학자 개리 클라인은 전문가들이 어떻게 직관을 이용해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는지 심도있게 탐구했습니다. 그는 전문가의 인지 과정을 밝혀내기 위해 '지식 감사(Knowledge Audit)' 라는 특별한 인터뷰 방법을 사용했는데요. 노련한 전문가일수록 현장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신호와 패턴에 민감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 상황을 빠르게 인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숙련된 의사는 환자의 미세한 표정 변화나 목소리 톤의 차이를 인식해 질병의 단서를 포착하고, 숙련된 소방관은 연기의 색깔과 냄새, 불길의 움직임 등으로 화재의 원인과 진행 방향을 예측합니다.

이렇듯 전문가들은 신호 인식과 패턴 파악을 잘 합니다. 그러면 거꾸로, 신호 인식과 패턴 파악 훈련으로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개리 클라인의 답은 "그렇다" 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키우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경계 조건'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 현상이 언제 성립하고, 언제 성립하지 않는가?", "A와 B는 어떻게 다른가?", 특히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 A와 B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찾아봄으로써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는 이야기죠. 예를 들어 마케터라면 "성공적인 마케팅 캠페인과 실패한 마케팅 캠페인을 구분하는 경계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개발자라면 "이 코드는 어떤 조건에서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탐구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경계 조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미묘한 차이를 포착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를 '내부적 차원의 전문성 향상', 즉 본인의 전문 영역을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내부가 있다면 외부도 있겠죠. 전문성 향상을 외부적 차원에서 꾀하는 방법은 뭘까요?

2) 세계: 외부 세계와의 충돌, 전문성의 확장

전문성을 키우는 또 다른 강력한 방법은 자신이 속한 세계를 다른 세계와 의도적으로 충돌시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계'는 전문 분야, 산업, 더 나아가서 자신의 상식과 편견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입니다.

외부 세계와의 충돌은 종종 새로운 관점과 통찰을 제공합니다. "저 도메인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내 도메인에 접목하면 어떤 혁신이 일어날까?", "내 도메인의 전문성을 저 도메인에 적용한다면 어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통해 도출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여럿 있죠.

생물학자가 공학자들과 협업하여 생체 모방 기술(biomimetics)을 개발하거나, 예술가가 과학자와 협력하여 새로운 예술적 표현 방식을 창조하는 것도 그러한 예입니다. 이처럼 이질적인 분야가 융합되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리고 내 기존 전문성이 확장되는 좋은 기회가 되고요.

다른 산업 분야의 혁신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예컨대 의료 분야 종사자가 항공 산업의 안전 관리 시스템에서 영감을 받아 의료 사고를 줄이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도, 그 반대도 가능하겠죠.

만약 두 분야에서 같은 현상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리거나, 기존의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을 발견한다면 오히려 좋습니다. 기존의 사고방식을 깨고, 더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요. 이게 외부적 차원에서 전문성을 강화시키는 비결입니다.

3) 계: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지점, 실천을 통한 성장

저는 작년에 AC2에서 ‘계모임’을 아주 의미있게 경험했습니다. 돈이 아닌 전문성을 모으는 '계'였기 때문입니다. 각기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한 사람(계타는 사람)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것이죠. 강의 랜딩 페이지 다듬고 참여 독려하기, 컨설팅 대상 기업의 훈련설계하기, 팀 내외부의 갈등 해소하기 등 다양한 현실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런 계모임 같은 커뮤니티가 내부적으로 다듬은 전문성을 실제로 외부에서 써먹어보는 좋은 실습 현장이 되어준다고 봅니다.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계'에서 실천을 통해 전문성을 성장시키는 겁니다.

좋은 계모임에서는 이런 효과가 생깁니다.

  • 계원들에게 도움을 더 잘 받기 위한 구조를 고민하게 됩니다. 내 문제를 잘 설명하고, 받은 아이디어를 실천해서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아 다시 실천하는 연습 기회를 얻는 셈입니다.
  • 동료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효능감이 생겨 즐겁습니다. 문제 해결을 지속하는 에너지가 생기죠. 동료들의 존재 자체도 든든하고요.
  • 무엇보다 다른 전문가들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신호와 패턴을 포착하는지 관찰하며 내 전문성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서로의 지식을 전이하고 전이받는 역동적 학습이 일어납니다.

계모임은 다양한 형태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온라인 포럼이나 스터디 그룹을 통해 특정 주제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거나,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을 공유하고 조언을 주고받을 수도 있겠죠. 중요한 것은 다양한 배경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이를 통해 함께 성장하는 겁니다.

맺으며

전문성 향상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경계'를 탐구하고, '세계'를 확장하며, '계'를 통해 실천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 이야기가 여러분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여정에 작은 힌트가 되었길 바랍니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 몇 가지를 제안드리며 마칩니다.

  1. 내 분야에서 중요한 '경계'를 찾아 목록을 작성해 보세요.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뭐지?", "과거 애매한 상황에서 이 둘을 내가 어떻게 구분했지?"
  2. 일부러 내가 속한 ‘세계’와 다른 세계를 충돌시켜 보세요.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관련 서적이나 기사를 읽어보며 질문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 분야의 어떤 지식을 내 분야에 접목시키면 혁신이 일어날까? 그 반대는?"
  3. 돈이 아닌 전문성을 모으는 ‘계모임’을 직접 만들거나, 기존의 계에 참여해 보세요. 저사람의 문제가 안 풀리면 잠이 안 올 정도로, 각자의 전문성을 내던져 치열하게 고민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