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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년회: 한 해를 함께 돌아보는 충만한 시간 (feat. 나라면 게임)

가족, 친구와 함께 기년회를 해보면 굉장히 따뜻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나라면 게임'이 더해진다면 내년도 계획을 성취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기년회: 한 해를 함께 돌아보는 충만한 시간 (feat. 나라면 게임)

며칠 전인 12월 26일에 AC2 분들과 함께 한 해를 돌아보는 행사인 기년회를 열었다. (참고글: 망년회 대신 기년회 by 김창준) 아내와 연애 초기, 그리고 결혼 초기까지도 함께 기년회를 했었는데 각자의 건강 문제와 여은 출산 등 여유가 없어져서, 개인 회고는 했어도 기년회는 못 했었다. 올해는 나도 이렇게 기년회를 하고, 아내도 동네 친구들과 기년회를 해서 오랜만에 나눌 수 있게 됐다.

몇 년만에 기년회를 해보니 역시나 굉장히 충만한 시간이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껴지는 통찰도 많았고, 서로 위로해주며 따뜻함도 느끼고, 내년도 계획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에너지도 차올랐다. 이번 기년회 참여 이후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해보신 분들이, 모두들 굉장히 따뜻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주셔서 뿌듯했다.

우연이지만 10년 전인 2014년에도 김창준, 이진영님과 함께 AC2에서 기년회를 기획하여 열었다. 그 때는 창준님의 기년회 소개글과 다르게 24개의 ‘질문 목록’을 이용해 기년회를 했었다(이것도 창준님이 만드셨다). 창준님의 오리지널 소개글에서 따와서 변형한 버전, 그리고 10년 전 만든 질문 목록을 활용한 버전을 통합하여 기년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봤다. 내년도 계획을 더 잘 이루기 위한 활동('나라면 게임') 방법도 같이 넣어두었다. 여러분도 한번 주변 분들과 함께 해보시길 추천드린다.

기년회 가이드라인

준비물

  • 다양한 색상의 필기구
  • 올해를 돌아볼 수 있는 개인 자료
  • 인덱스 카드 (또는 적당한 크기의 카드)

각자 올해 돌아보기 - 교훈 찾기 버전

  1. 1월 1일부터 개인 자료를 천천히 훑으며 내가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일을 당했는지 되짚어 본다.
  2. 혹시 그 때 어떤 교훈을 얻은 것이 있다고 느껴지면 인덱스 카드 한 장을 빼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적는다(이것을 "사건"이라고 하자). 이 사건의 폭은 생각보다 넓다 .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 것도 사건에 해당한다.
  3. 카드 반대면에 교훈 내용을 간략히 적는다. 격언이나 시구처럼 짤막하면서 울림이 있으면 더욱 좋다.
  4. 교훈 내용을 적은 면 상단에 다른 색 펜으로 제목을 단다. 무슨 무슨 법칙이라고 이름 짓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이다. 나에게 의미있고 기억하기 좋으면 그만이다.
  5. 인덱스 카드 한 장에 교훈 하나씩 기록하는 식으로 계속 날짜를 넘어가면서 1번부터 다시 반복한다. 그렇게 해서 오늘 날짜가 될 때까지 거슬러 온다. 만약 이미 교훈 카드를 만들었는데 그 이후에도 비슷한 교훈을 느꼈다면 뒷면에 새 사건을 추가한다.
  6. 책상 위를 깨끗하게 치우고, 모인 카드들을 늘어 놓는다.
  7. 중요도, 깊이, 혹은 잠재성 등의 순서로 정렬을 한다. 더 중요하거나 더 깊이가 있는 교훈은 왼쪽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것은 오른쪽으로 간다.
  8. 제일 왼쪽에 있는 세 장의 카드를 뽑는다.

각자 올해 돌아보기 - 질문 목록 활용 버전

1. 올해 잘 산 물건?
2. 올해 좋았던 책?
3. 올해 좋았던 장소?
4. 올해 인상 깊었던 사람은?
5. 올해 고마웠던 분은?
6. 올해 좋았던 영화는?
7. 올해 꾸준히 했던 것들은?
8. 올해 의외의 성공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잘된 일들)
9. 올해 잘 쓴 10만원 이하의 소비는?
10. 올해 좋았던 모임?
11. 올해 큰 실수?
12. 올해 눈물이 나왔던 순간?
13. 올해 뿌듯했던 일은?
14. 올해 새롭게 접한 것은?
15. 올해 나 답지 않았던 순간은?
16. 올해 기분 좋았던 경험은?
17. 올해 당황스러웠지만 잘 대처했던 순간?
18. 올해 왠지 모르겠지만 그냥 떠오르는 순간은?
19. 올해 미뤄오다가 해치워서 속 시원한 일은?
20. 올해 가슴에 남는 명언은?
21. 올해 칭찬을 받았던 일은?
22. 올해 내가 만든 것?
23. 올해 수련한 것?
24. 올해 나에게 도움된 습관?
  1. 이 질문 목록을 보며 뭔가 머리에 떠오르거나 왠지 탐색해보고 싶거나 하는 질문들을 따로 표시하여 최대 3개의 질문을 고른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서, 최대 세 가지까지의 답을 할 수 있다. (예: 올해 좋았던 영화 3편, 올해 좋았던 모임 2개, 올해 내가 만든 것 3가지)
  2. 올해 1월부터 본인 다이어리나 캘린더, 이메일 등을 찾아보면서 각 질문에 대한 후보 답들을 찾는다. 1월, 2월, 이렇게 순차적으로 지나가면서 답을 찾아본다.
  3. 만약 한 질문에 답이 3개를 넘어선다면 다 뽑은 후에 그 중 베스트 3개를 뽑는다.
  4. 될 수 있으면 답을 단답형으로 찾기보다, 그것 관련된 스토리를 기억해 보면 공유할 것도 더 많아지고 더 좋은 경험이 된다. (보통 시간이나 장소로 시작하면 스토리다. "그때가 일요일 오후였지", 혹은 "회사 옥상에서" 등)
  5. 스토리를 뽑고 나서는 ‘내가 왜 이걸 중요하게 느끼는가’ 하는 "왜?"에도 답을 찾아보면 좋다. 왜 이 영화가 그렇게 좋지? 왜 그 사람이 나에게 중요하지? 등.

그룹으로 모여 본인 카드 소개하기

어떤 버전이든 '돌아보기'의 결과로 카드 3장이 나왔을 것이다.

그룹으로 모여 1인당 최대 5분씩 돌아가며 본인의 카드를 1장 소개한다. (뭔가를 먹으면서 하면 더 좋다) 질문, 토론, 떠오르는 생각 나누기 다 좋지만 개인 할당 시간은 지킨다.

그룹의 모두가 모든 카드를 소개할 때까지 반복한다.

각자 내년 계획 세우기

각자 본인이 뽑은 3장 중 내년에 꼭 기억하고 싶은 '올해의 교훈'을 하나 뽑아서 따로 표시한다. 그 카드 뒷편에, 내년에 이 교훈을 기억하고 활용하려면 어떤 장치/도구/구조 등을 마련할지 적는다.

추가로 카드 2장을 꺼내 내년 이맘 때 뿌듯하고 싶은 목표를 하나씩 적는다. 뒷편에는 그 목표를 위해 새해에 할 구체적인 첫 행동을 적는다. (언제, 누구와, 어떻게 등)

그룹으로 모여 내년 계획 공유하고 아이디어 내주기 (나라면 게임)

다시 그룹으로 모여 내년도 계획을 공유한다. 나는 이런 교훈이 있었고, 그래서 이런 계획을 세웠다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준다. 일명 '나라면 게임'.

예를 들어 A, B, C 3명이 그룹으로 모여 기년회를 한다고 해보자.

  1. A가 본인의 교훈, 계획, 첫 행동을 하나 공유한다.
  2. B가 딱 1분간만 나라면 이렇게 해보겠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1. 나라면 A의 '올해의 교훈'을 어떤 장치/도구/구조로 기억하고 활용할지
    2. 나라면 A의 내년도 목표를 위한 첫 행동 어떻게 할지
  3. C는 A와 B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1분간 나라면 어떻게 할지 이야기한다.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켜도 되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해도 된다.
  4. A는 다 듣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뭘 해보고 싶은지 이야기한다.
  5. 한 바퀴 더 돈다. B - C - A.
  6. 이번에는 B가 이야기하고, C - A - B 로 두바퀴 돈다. 그다음은 C가 얘기하고, A - B - C로 두바퀴.

핵심은 B와 C가 아이디어를 내줄 때 A는 침묵하고 시간을 엄수하는 것이다. 그래야 각자가 평가받는 두려움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 창발성이 생긴다. 물론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본인 선택이지만, 그러면 시간은 더 오래 걸렸는데 얻은 통찰은 더 적어지는 묘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 C의 차례가 됐을 때 다들 지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나는 AC2에서 몇 달 전 이걸 배워 (AC2에서 부르는 이름은 '두 바퀴 돈다'에 착안한 '바이씨클 코칭'이다) 십수번 이상 다양한 주제로 시행해봤다. 4명이서 해도 한 턴당 딱 10분쯤 걸리는데, 걸리는 시간 대비 나오는 - 특히 두번째 바퀴에서의 - 아이디어와 통찰의 수준이 굉장히 높아서 할 때마다 놀란다.

나의 2024년 기년회 카드

나는 질문 방식으로 올해를 돌아보며 다음 3가지를 골랐다. 꾸준히 하고, 수련했던 것들 덕분에 의외의 성공이 나온 것 같아서 순서를 이렇게 잡았다.

7. 올해 꾸준히 했던 것들은?
23. 올해 수련한 것?
8. 올해 의외의 성공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잘된 일들)

고르기가 쉽진 않았고 각 질문 안에서도 많은 아이템이 나왔지만 결국 이렇게 정리되었다. 원래 2024년 회고도 이번 글로 대체하려고 했는데, 돌아보다 보니 기억하고 싶은 기록이 아직도 많다는 걸 깨달아서 1년 회고는 따로 남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