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에 올라탈 수는 없다 + 동기부여 관리하기
몇 달동안 달리던 기차가 멈추다
올해 초부터 폭주기관차처럼 굉장히 여러가지 일을 벌이고, 나름 그 모든 걸 잘 해내왔습니다. 회사 업무, 육아, 디버깅 전문가 인터뷰, 시각화 교육, 글쓰기, 블로그, 코칭… 이게 가능했던 건 개인적 장치와 사회적 장치를 잘 마련해뒀기 때문이었어요.
- 개인적 장치: 수면, 햇빛, 운동, 독서, Anki, 저널 등 데일리 루틴을 꾸준히 지킴
- 사회적 장치: 개인적 루틴의 과정과 결과를 커뮤니티에 공유하고, 또 여러 활동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함
이 장치들이 잘 맞물리니 좋은 관성이 생겨, 앞으로 쭉쭉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톱니바퀴가 너무 잘 맞물려 있으면 부품 하나만 망가져도 전체가 삐걱이기 마련이죠. 육아 난도가 올라가고 체력이 소진되면서 루틴이 하나둘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악순환이 시작되었죠.
- 짜투리 시간에 공부하거나 정리하는 대신 게임을 했습니다.
- 밤에 게임을 하니 수면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 밤에 일 안하고 아침에 집중력이 떨어지니 일이 점점 쌓입니다.
- 쌓여있는 일들이 신경쓰여서 운동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 운동을 안 하니 체력이 더 떨어졌습니다.
- 아이와 놀아주다가 팔을 다치고,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렸습니다. 구순구각염, 등 저림, 허리 통증, 두통 등등.
결국 현재 나의 캐파가 모자라다는 걸 인정하며 많은 걸 내려놨어요.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것만 간신히 해냈죠. 어차피 그동안 벌여놓은 게 많아서 수습하기도 벅찼습니다. '디버깅 전문가를 만나다' 프리미엄 뉴스레터도 중단되었고요. 어쩌다 조금 시간이 생겨도 그냥 머리를 비우고 쉬었습니다.
이렇게 두 달 정도 보내니 에너지가 살짝 다시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예전으로 돌아가려니 참 쉽지 않더군요. 물론 육아는 계속 힘들었지만… 게임도 접었는데 왜 에너지가 여전히 없을까? 약간 멍한 상태로 2주쯤 보내다가, 지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메타인지가 올라왔습니다. 그때 일기에 적어둔 내용을 가져옵니다.
나는 올해 초 미친듯이 달렸던 그 속도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해냈던 걸 익히 아니까, 다시 한 번에 그 속도를 되찾고 싶었다. 하지만 걷고 있다가 바로 기차로 뛰어오를 수는 없다. 천천히 뛰면서 속도를 내다가, 기어가 충분히 올라가면 갈아타야 한다. 사실 올해 초에도 정확히 그렇게 했다. 하나하나 쌓아올리는 과정 끝에 결과적으로 기차가 된 거지, 처음부터 그리 빠르게 달렸던 건 아니다. 심지어 꼭 그때처럼 폭주하면서 달릴 필요도 없다.
당장은 불만족스러워도 조금만 속도를 올려보려고 합니다. 지난 루틴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1인 개발자가 동기부여를 관리하는 방법
위 글을 6월을 시작하며, 월요일에 썼었는데요. 이런 글을 쓴 덕분인지 이번주는 상당히 만족스럽게 보냈습니다. 에너지가 올라왔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러던 차에 긱뉴스에서 아주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1인 개발자로서의 동기부여 관리하기(원문: https://mbuffett.com/posts/maintaining-motivation/)라는 글이었는데, 지금 제 상황에도 잘 들어맞더군요. '1인 개발자'라고는 되어있지만 누구나 쓸만한 동기부여에 대한 실전 팁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락은 필자가 "하루를 끝낼 때 일을 의도적으로 90%만 완료해두는 습관을 들였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날은 조금 찝찝하더라도 다음날 10배 더 일을 하고 싶어졌다고 하더군요. 단, 너무 단순한 일(e.g., 모든 작업을 끝내두고 git commit만 하는)은 아니고, 5-10분 안에 끝낼 수 있으며 뭘 해야 하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는 그런 일을 남겨둔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알고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인지적으로 아주 유리한 전략입니다. 관련하여 자이거닉 효과/오브시안키나 효과라는 심리 현상이 있거든요.
- 자이거닉 효과: 사람은 중단한 일을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 오브시안키나 효과: 사람은 중단한 일이 있으면 이후 자유시간이 생겼을 때, 다른 외재적 보상이 없더라도 중단됐던 일을 다시 해서 완료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의 불편함을 참고 다음날의 생산성으로 전환하는 건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데, 이를 실천했다는 게 아주 멋지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유튜브 등에 중독된 상태'에서 한번에 '일에 집중하는 상태'로 넘어가는 게 어려우니 빈 화면 멍하니 쳐다보면서 '아예 아무것도 안 하는' 중간 상태를 둔다는 것도 훌륭했고, 유의미한 일을 하나도 하지 않은 날('제로 데이')에는 '태만하지만 즐거운 활동'을 해도 죄책감 때문에 온전히 즐기기 어려우니, 먼저 조금이라도 유의미한 작업을 한다는 것도 좋았습니다. 둘 다 '작은 진전을 꾸준히' 느끼면서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인지적으로 아주 유리한 전략이죠.
저도 올해 들어 개인사업을 시작하면서, 혼자서 동기를 끌어올려 여러 일을 처리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고 번아웃도 종종 왔습니다. 필자의 이야기를 잘 기억해두었다가 잘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와 뉴스레터로도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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