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고민 #4] 의심하는 대신 판단 기준을 알려주세요

'제대로 했으면 이럴 리가 없다'고 얘기하기보다는, 제대로 하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는 게 더 변화를 일으키기에 유리합니다.

"너 오늘 머리 안감았지?"

어릴적 어머니에게 자주 들었던, 그래서 기분이 참 나빴던 말 중 하나입니다. 분명히 감았는데 안했다고 하시니까요. 감았다고 대답하면 돌아오는 말은 "근데 왜케 부스스하냐" 였어요.

그런데... 저도 7살 딸아이에게 비슷하게 말하고 있더라고요. "손 안씻었지?" "씻었어!" "근데 왜케 손이 더러워?" 처럼요. 딸도 왜 자꾸 물어보냐며 기분 나빠하고요.

잘 생각해보니 여기에는 제 암묵적 판단이 숨어있었어요. '제대로 손을 씻었으면 손톱 상태가 이럴리가 없다' 같은 판단이요. 그리고 '제대로 씻었음'을 판단하는 기준과, 제대로 씻는 방법에 대해 딸과 진지하게 얘기나눈 적 없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빠는 손톱 밑이 까매서 안 씻은 줄 알았다, 손톱을 손바닥에 비벼서 잘 닦아보자"며 함께 다시 씻었어요. 딸도 납득했고, 이후 손톱 밑이 더 깨끗해지더군요.

우리가 주니어에게 작업을 위임한 뒤 확인할 때도 비슷하게 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니어 X님이 올린 코드를 리뷰하는데, '관련된 코어 기능 동작 직접 확인하기'를 안 한 것 같다는 의심이 든다고 해봅시다. 어떻게 얘기를 꺼낼 수 있을까요?

짧고 쉬운 버전은 이런 식이겠죠. "A 기능이 동작하지 않는데 리뷰 요청 전에 직접 실행해보셨나요?"

하지만 주니어가 더 성장할 수 있게 되고, 상호 신뢰를 쌓는 대화는 이런 식일 거라고 봅니다. "저는 이런 이유로 이 PR이 A 기능에 영향을 준다고 판단했어요. 근데 제가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테스트해보니, A 기능이 B가 아닌 B'처럼 동작하네요. 이게 의도된 변화인지, X님은 어떤 식으로 확인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다음은 의견을 교환하며 파악한 상황에 맞춰 개인 역량 향상을 위한 조언을 해줍니다. 나는 어떤 신호로부터 이게 쎄하다는 걸 알아차렸나, 같은 얘기를 나누며 짝 프로그래밍을 할 수도 있고요. 핵심은 '제대로 하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체감시키는 겁니다.

그리고 애초에 실수가 덜 발생하도록 하고, 더 일찍 알아차리도록 하는 환경 개선도 잊지 말아야겠죠.

  • 직접 실행 자체를 안 했음 → PR Open 단계에서 E2E 테스트가 통과해야만 리뷰 요청 가능하게 함
  • 실행은 해봤는데 A를 확인 안 했음 → 특정 코드 영역이 어떤 기능과 연관되는지 지도 그려서 문서화
  • A를 확인했는데 테스트가 불충분했음 → 기능 명세와 테스트 추가, 테스트 방법 문서화
  • A 동작이 B'처럼 동작하는 게 의도가 맞음 → 의도가 기획, 코드, PR에 드러나게 프로세스 정비

마지막으로 역량 향상, 환경 개선보다 더 중요한데 간과하기 쉬운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이 행동이 왜 중요한지 이해 수준을 맞춤으로써 동기를 부여하는 겁니다.

어머니가 제 머리 상태를 지적하고, 판단 기준(부스스함)을 제시하고, 직접 머리를 만져 어떻게 해야 단정해보이는지도 알려주셨지만... 제 행동이 바뀌진 않았어요.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어머니가 원하는 수준으로 단정한 머리가 저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머리가 단정해야만 하는 조직에 있어본 적도 없던 터라, 샤워 후 머리를 만져야겠다는 인지 자체도 못했고요. 당연히 습관화도 안 됐습니다. 어머니는 요즘도 제게 머리 지적을 하십니다. ㅎㅎ

중요성 인지, 동기부여, 판단 기준 이해, 역량 향상, 환경 개선, 습관화... 사람의 행동을 장기적으로 변화시키기가 이토록 어렵습니다. 이쯤되면 바뀌는 게 더 신기할 정도죠. 저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과학적으로 노력하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어요. (이 행동 변화와 습관화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좀 더 다뤄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크게 변화하고 성장했을 때는 어떠셨나요?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한 요인은 뭐였는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