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실천가들이 실험을 설계하는 방법
도날드 쇤(Donald Schön)이라는 미국의 철학자에 대해 최근에 알게 됐습니다. 1997년에 돌아가셨는데, 전문가들이 어떻게 학습하고 실천하는지 (또는 어떻게 실천을 통해 학습하는지) 오랫동안 연구한 분이더군요.
<The Reflective Practitioner: How Professionals Think in Action>(1983)은 쇤의 이론이 집대성된 책입니다. 쇤의 이론은 교육, 경영, 건축, 의료 등 수많은 분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책 한 권이 10만회 가까이 인용되었을 정도로요. 책의 핵심 아이디어를 짧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 Reflection-in-Action(행동하며 반영하기): 전문가들은 '발로 뛰면서' 생각한다. 작업을 하는 그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하고, 얻은 정보를 토대로 작업 방식을 실시간으로 조정한다. 이러한 관찰-반영-조정 과정 덕분에 전문가들이 불확실하거나 도전적인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
- Reflection-on-Action(지난 행동을 돌아보기): 전문가들은 과거의 사건에 대해 회고하며 행동과 의사결정을 분석한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배움을 얻어 미래의 실천을 개선하는 데 쓴다.
- Knowing-in-Action(행동하며 지식 얻기): 전문가들은 암묵지에 의존하여 행동하고 의사결정할 때가 많다. 이런 암묵지는 공식적 이론이 아닌 실천을 통해 몸에 체화된다.
- Professional Artistry(전문화된 예술성): 대부분의 현실 세계 문제는 '지저분'해서 미리 정해진 규칙이나 절차를 적용해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직관, 창의성, 체계적 추론을 결합해 복잡하고 모호한 문제를 '예술적'으로 해결한다.
도날드 쇤의 실험 모형
저는 '도날듸 쇤은 실험을 3가지 종류로 구분했다'는 AC2 김창준님의 언급으로 쇤에 대해 알았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굉장히 여러 실험을 하지만 그걸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보를 습득하고 전문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실험을 설계하고 실천한다고 하더군요.
저도 실험 설계를 더 잘 하고 싶었지만 어려웠는데, 쇤의 3가지 실험 모형을 알고 나니 '실험 목적을 어떻게 잡아' '어디에 주의집중하며' 실험해야 할지 좀 더 감이 왔습니다.
When the practitioner reflects-in-action in a case he perceives as unique, paying attention to phenomena and surfacing his intuitive understanding of them, his experimenting is at once exploratory, move testing, and hypothesis testing. The three functions are fulfilled by the very same actions. And from this fact follows the distinctive character of experimenting in practice.
-- The Reflective Practitioner, 147p
3가지 모형에 대해 ChatGPT와 함께 좀 더 탐구해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1. 탐색적 실험(Exploratory Experiment)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다면 탐색적 실험을 돌립니다. 내가 모르는 상황에서 상황 자체, 문제, 잠재적 해결책에 대한 감을 얻기 위함입니다. 실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일단 해보는 것이죠.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게 이 실험의 주 목적입니다.
2. 움직임 확인 실험(Move Testing Experiment)
이렇게 하면 좋아질까?를 확인하고 싶다면 움직임 확인 실험을 돌립니다. 탐색적 실험을 통해 얻었든, 이미 알고 있었든 간에 특정한 행동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죠. 이 때 그 행동을 해보고 상황이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즉 행동의 효과를 관찰하는 게 이 실험의 주 목적입니다. (아직 그 행동이 왜 효과가 있는지는 모릅니다)
3. 가설 확인 실험(Hypothesis Testing Experiment)
상황 또는 문제의 원인은 이거다!를 확인하고 싶다면 가설 확인 실험을 돌립니다. 움직임 확인 실험과 달리, 현상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원인를 탐구하여 일종의 멘탈 모델을 만들기 위한 실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황이 예측한 대로 흘러가는지 관찰하는 게 이 실험의 주 목적입니다.
물론 움직임 확인 실험을 '이 행동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라는 가설 확인 실험의 일종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움직임 확인은 당장 움직여서 효과를 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가설 확인은 원인을 이해하여 본인만의 이론을 만드는 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맺으며
나에게 닥친 문제가 복잡하고 불확실하다고 느껴질 때는 마음을 의식적으로 가볍게 먹고 실험을 해봅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실험이 어떤 타입인지도 한번 생각해보고요. 좋은 실험은 설계해보는 것만으로 힘이 차오르곤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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