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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밥을 꼭꼭 씹어봅시다.

지난 주에 점심 먹으며 글 두 편을 만들어준 곳에서 점심 먹으며 또 하나의 글감이 떠올랐다. 여기가 나의 뮤즈일까, 하며 식권을 10장 더 샀다.

어릴 때 믿었던 그 이야기는 진실이었을까
식당에서 살짝 탄 닭고기를 먹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니 답변이 재미있었다. 피티야 오늘도 고마워. 1990년대, 2000년대에 상식으로 여겨졌지만, 2020년대인 현재는 그렇지 않은 걸로 밝혀진 사실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예를 들어 나는 탄 음식을 먹으면 암에 걸리기 쉽다는 말을 어릴 때 많이 들었는데 지금도 유효한지 궁금해. 참신한 거 위주로 5개쯤 알려줄래?
무엇부터 하면 더 유리해질까
할 일이 여럿 있을 때 무엇부터 하면 나머지 작업을 하는 데 더 유리해질까. 어떤 정보부터 얻어야 이후 예측가능성이 높아질까. 뭔가 떠오른다면 그 정보부터 얻고, 그 일부터 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먹고 싶은 음식’이라는 게 내 안에서 거의 사라져버렸다. 아내가 오늘 뭐 먹고 싶냐고 물어봐도 먹고 싶은 메뉴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식욕이 없는 건 아니다. 배는 제 때 고프다. 단지 특정한 음식에 대한 감정과 욕구의 크기가 확 줄었달까. 예전에 안 먹던 음식도 요즘은 곧잘 먹는데, 반면 좋아하던 음식도 그냥 별 감상 없이 먹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내게 식사시간은 ‘일 사이에 쉬는 시간, 조금은 아까운 시간, 허기를 채우는 시간, 영양 균형 신경쓰며 적당한 칼로리를 채우는 시간….’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조금은 아까운 시간’이다 보니, 특히 혼밥할 때는 핸드폰으로 뭔가 생산적인 걸 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꼭 생산적인 걸 하지 않더라도, 혼밥할 때는 항상 폰을 보며 뭔가 하고 있다. 자리에 앉으면 핸드폰부터 열었다.

그런데 요즘은 혼밥할 때 가끔 시도해보는 게 있다.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꼭꼭 씹어먹기’다. 오늘도 해봤고, 할 때마다 놀랍다. 내 혀가 이런 느낌을 느꼈던 게 언제였지? 천천히 씹으며 온전히 입 안에 집중한다. 버섯의 식감, 브로콜리의 식감, 닭고기의 식감, 두부의 식감. 모두 참 생소하면서도 즐겁기까지 했다.

문득 작년에 인상깊게 읽었던 대니얼 카네만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다. 책에는 인간에게 두 종류의 자아 -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 - 가 있으며 서로 다르게 세상을 인지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기억하는 자아는 경험하는 자아의 느낌 전부를 ‘기억’하지 못한다. 대개 가장 강렬했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peak-end rule)만이 기억을 형성한다.

이렇듯 두 자아는 세상을 다르게 인지하기 때문에 만족과 행복의 기준 또한 다르다. 일상에서 걸핏하면 무시되는 ‘경험하는 자아의 행복’을 살펴보기 위해 카네만과 연구자들은 순간순간의 경험을 표집하는 ‘체감 행복 측정법’을 개발했고, 이는 이제 갤럽을 비롯한 대규모 설문 조사에서 널리 쓰인다. 다음은 책에서 나오는 분석 결과 중 하나다.

보통의 경우, 기쁨과 고통은 그 순간 일어나는 일에서 나오고, 우리가 그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생긴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움을 얻으려면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조사 결과, 프랑스 여성과 미국 여성은 먹는 데 거의 같은 시간을 쓰지만, 프랑스 여성이 미국 여성보다 먹는 행위에 두 배 더 주목하는 성향이 있었다. 미국 여성은 먹으면서 다른 일을 하는 때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먹는 즐거움이 줄었다.

경험하는 자아가 과정 중심적이라면, 기억하는 자아는 결과 중심적이다.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즐겨라.’ 뻔한 조언이지만, 실제로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먹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식사시간이 조금 더 즐거워졌다. 앞으로 조금 더 자주 시도하려 한다. 나만큼이나 식탐이 별로 없는 여은이에게도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여은이가 잘 먹는 아이가 되길,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

“과정 vs 결과”라는 키워드에 주목하니 조금 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하지만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이니 나중의 나에게 미뤄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