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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 견적 어떻게 내시나요?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을 하며 비용 산정을 하는지 정리해봤습니다.
웹사이트 개발 의뢰를 받았는데, 이러저러한 상황이고, 잠깐 해보니 크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은데, 비용을 얼마나 청구해야 할지 고민이다

몇 주 전 지인이 이런 고민을 하시길래 제 경험을 나눴습니다. 그런데 글을 적고 얘기 나누다 보니 제가 비용 산정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협업 방식들이 점점 드러나서 재밌었어요.

저도 '외주 요청'만 놓고 보면 경험이 아주 많진 않지만, '프로젝트 제안 요청'이라고 보면 꽤 경험이 많았습니다. 이때 비용 산정을 제가 주로 어떻게 했는지를 정리해봤습니다.

참고로 저도 이것들을 '이미 잘 하기 때문에' 이렇게 적어두는 건 아닙니다. 성공과 실패 경험이 있고, 앞으로 더 잘 하고 싶어서 정리해두는 것에 가깝습니다.

개인 제안

1)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의 금전적 가치가 얼마냐

'나는 기본적으로 시급 얼마짜리 인간이냐' 같은 거죠. 이 때 내가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음에 주의하려고 합니다.

제가 스스로 산정한 시급의 첫 베이스라인은 회사에서 받는 연봉을 시급으로 환산한 가격이었어요. 연봉 / (52주 * 주당 40시간) 으로 계산했죠. 단순 비교는 안 되지만 내가 시장에서 인정받는 금액이 일단 이정도구나, 를 인지하는 데는 충분했습니다. 원래 장기계약이면 할인이 들어가게 마련이니 단기 프로젝트 비용에서는 이보다 높게 잡아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작년까지 개인의 문제 해결을 위한 코칭도 했었는데요. 위 베이스라인을 토대로 코칭 비용을 점차 높여가면서, 얼마로 책정하면 어떤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요청이 들어오는지를 보며 (감으로) 조정했습니다.

2) 이 프로젝트에 내가 총 얼마나 시간을 쓰겠냐 (사전, 도중, 사후)

제안받은 일의 스펙을 아주 대략적으로 짜보고, 타임라인에 따라 4종류의 시간을 다시 대략적으로 산정합니다. 예를 들어 강의 요청이라고 하면 이렇게 됩니다.

  • 강의 기획 구체화를 위해 제안자와 핑퐁하는 시간
  • 강의자료 설계, 제작 시간
  • 실제 강의에 투입하는 시간
  • 강의 사후 피드백 수집, 강의 참여자와 핑퐁하는 시간 등

3) 기본 비용 = 시간 * 시급 * 1.5

1.5를 곱하는 이유는 내 추정이 당연히 틀렸을 것이니,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버퍼의 의미입니다. 이렇게 기본 비용을 정해 1차적 의사결정 가이드라인으로 둡니다.

4)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할인

내 에너지가 줄어들게 해주거나, (돈 외에) 얻는 가치가 커지게 만드는 요소들을 생각해봅니다.

  • (신뢰하는 지인이라서 등의 이유로) 내 에너지가 덜 들고 다양한 실험 가능성이 생기겠다 싶으면 할인 가능
  • 이 제안자와 함께 뭘 하든 재미있고 에너지가 생기겠다 싶으면 할인 가능
  • 이 프로젝트 경험을 나의 학습과 성장에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겠다 싶으면 할인 가능
  • 프로젝트 자체가 세상에 좋은 영향을 많이 미치겠다 싶으면 할인 가능
  • 제안자와의 긍정적 관계가 이후 내 커리어에 좋은 영향을 많이 주겠다 싶으면 할인 가능
  • 제안자가 굉장히 절실하고 구체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 내 투입 대비 성과가 커질테니 할인 가능

보시다시피 독립적인 요소들은 아닌데요. 정리해보니 이게 꼭 '할인 요소'라기보다는 제가 일을 할지 말지 선택하는 기준도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5) 여전히 비용이 맞지 않으면

이렇게 할인 가능성을 봤는데도 비용이 안 맞으면 거절하거나, 스펙을 확 줄여서 도와주거나(예: 문제 정의만 돕는 코칭), 아예 선의로 돈 안받고 (그러면 상호 기대치가 확 낮아지니까) 작게 도와준다거나... 도 해봤습니다.

기업 제안

기업과의 프로젝트 비용은 그 기업이 '얼마나 낼 용의가 있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더군요. 하방은 당연히 제 시급을 기반으로 계산하는 개인적 제안과 같은데요. 상방은

  • 그 기업이 선택 가능한 다른 선택지 대비 내가 얼마나 아껴줄 수 있는가 (예: 내가 외주해주는 대신 내부 개발자가 이거 작업하려면 몇명이 몇달 걸리냐)
  • 내 작업의 잠재 이득이 얼마나 생길 수 있는가 (예: 내가 만든 제품을 통해 시급 얼마인 몇 명이 월 몇 시간 아끼게 되나)

같은 걸 토대로 (나의 투입량과 상관없이) 훨씬 세게 불러도 될 때가 꽤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대신 훨씬 더 강한 책임감을 지녀야 하고요.

다만 1회성으로 끝나는 강의나 워크숍과 달리,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을 만들어주는 경우에는 조심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 우선 만들어준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이후 업데이트 여부, 인수인계, 유지보수 같은 것까지 끼어있을 수 있어서 생각보다 장기 계약이 될 수 있다는 면에서 그렇고요. 이건 돈도 생각보다 오랫동안, 더 많이 받을 수도 있고, 동시에 내 시간도 생각보다 훨씬 더 들 수도 있다는 의미죠.
  • '외주'라는 단어로 나의 활동이 규정됐을 때, 아무래도 사회적 관념에 영향을 받아서 (처음엔 그렇지 않았더라도, 점차) 협력관계가 아닌 갑을관계처럼 변할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 프로젝트가 커지면 맺고 끊음을 확실하게 하는 게 어려울 수 있는데, 잘 안 됐을 때 나의 평판에도 악영향이 더 크게 올 수도 있고요.

즉 기업 제안은 리턴도 크고, 리스크도 큽니다. 이런 이유에서 기업과의 협력은 훨씬 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게 결국 이런 질문들로 이어지게 됩니다.

  1.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까 말까? → 좋은 협업 대상을 판별하고, 프로젝트가 내게 주는 기회비용 대비 가치 판단하기
  2. 어떻게 협업할까? → 진행 과정에서 정보를 계속 수집하고, 상호 신뢰와 성공 가능성을 점진적으로 높이기
  3. 언제 어떻게 마무리할까? → 완료 기준을 깔끔하게 정해 끊되, 이후의 가능성은 열어두기

즉 '나의 프로젝트 협업 방식'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건 다음 글에서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