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로젝트 할까 말까?

제가 프로젝트를 어떤 기준으로 참여하고, 어떻게 진행해서, 어떻게 마무리하는지 정리했습니다.

이전 글에서는 저에게 외주나 컨설팅 등 프로젝트 요청이 들어왔을 때 비용을 산정하는 방식을 공유했습니다. 이걸 정리하다 보니, 저에게는 비용보다는 협업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게 드러났어요. 크게 3가지가 중요하더군요.

  1.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까 말까? → 좋은 협업 대상을 판별하고, 프로젝트가 내게 주는 기회비용 대비 가치 판단하기
  2. 어떻게 협업할까? → 진행 과정에서 정보를 계속 수집하고, 상호 신뢰와 성공 가능성을 점진적으로 높이기
  3. 언제 어떻게 마무리할까? → 완료 기준을 깔끔하게 정해 끊되, 이후의 가능성은 열어두기

이 항목들은 제가 이직할 회사를 선택하고, 그 안에서 일하고, 다시 떠나는 과정과도 무척 유사했습니다. 회사생활이라는 것도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니까 어찌보면 당연하겠지만요.

참고로 이전 글과 마찬가지로, 제가 이미 잘 해서 이렇게 글을 쓴다기보다는 지난 성공과 (많은) 실패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겠다를 정리한 글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해보고 깨질 때마다 이 글에 다시 돌아와서 업데이트 해두려고 합니다 😅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까 말까?

프로젝트 초기에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 프로젝트의 기회비용 대비 가치를 판단하여 참여 여부를 결정합니다.

여기서 의도적으로 '착수'나 '시작' 대신 '참여'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보다는 이미 누군가가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이미 하고 있던 무언가'라는 자원으로부터 시작하는 건 프로젝트 성공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문제가 절실하다면 (본인이 명시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지언정) 분명 어떠한 꼼수, 임시 해결책을 활용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게 아니라면 문제가 그만큼 절실하지 않다는 뜻이고요.

판단 기준

지난 글에서의 '비용 할인 요소'와 유사하지만 여기서는 좀 더 좁혀서 4가지를 봅니다.

  1. 나: 내가 들이는 시간 대비 얻는 돈과 학습량이 충분히 클 것 같은가
  2. 프로젝트: 개인적/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크게 미칠 것 같은 프로젝트인가
  3. 상대방: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마음에 들어서 함께 뭘 하든 재밌을 것 같은가
  4. 직관: 그냥 이 프로젝트 해보고 싶은가

평가 방식

위 기준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평가와 기록을 체계적으로 하진 않았는데요. 올해부터는 이런 식으로 하려고 해요.

A. 우선 직관 점수를 5점 만점으로 매깁니다. (1점: 전혀 그렇지 않다, 5점: 매우 그렇다)

B. 나, 프로젝트, 상대방에 대해 역시 5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깁니다.

C. (B의 평균 + A) / 2 가 최종 점수가 됩니다. 3.5점 이상이면 참여합니다. 프로젝트 중간중간에도 이걸 측정해보고, 3.5점 미만으로 떨어지면 점수를 높이기 위한 액션을 의식적으로 취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드롭합니다.

A를 먼저 매기는 건 B에 영향을 덜 받은 상태에서 직관을 발휘하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인지 편향이 있을 수 있으니 B를 계산해서 A와 함께 의사결정에 쓰는 거죠. 대니얼 카네만, 개리 클라인, 그리고 김창준님이 점수 평가하는 방식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앞으로는 제안 들어오거나 참여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주기적인 평가 기록을 남기고, A와 B 평균의 상관계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통계를 내보려고 합니다. 상관계수가 그리 높지 않다면 B에 대한 제 생각을 변경할 기회라고 보고요.

💡
프리미엄 구독자 분들을 위해 프로젝트 참여/속행 여부 판단 기록 템플릿을 글 최하단에 넣어두었습니다. 비슷하게 기록해보고 싶으시면 사본 떠서 활용해보세요. 😄

판단은 살아있어야 한다

단, 제가 이 점수들을 홀로, 단번에 계산해보고 기계적으로 결정하는 건 전혀 아닙니다. 저는 '어떤 상황이든 내가 개입해서 영향 미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믿어요. 예를 들면:

  • 비용 협상도 할 수 있고
  • 작업 범위를 조절할 수도 있고
  • 담당자를 바꿔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고
  • 풀고자 하는 문제 정의를 바꿀 수도 있고
  •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더 데려올 수도 있고
  • 너무 쉬우면 작업 난도를 높여 더 도전적으로 만들 수도 있고
  • 프로젝트에 임하는 내 마음가짐을 바꿔먹을 수도 있겠죠. (Job Crafting)

즉 '점수 매기기'는 '이 프로젝트는 점수 낮으니 안 해'가 아니라 '어떻게 이 프로젝트가 내게 더 살아있고 가치있게 만들까?'를 생각해보고, 제안자와 함께 시도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협업할까?

기준을 세워 판단하더라도 크게 엇나갈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특히 금전적 계약이 걸려있다면 상대방이 나의 작업물 또는 노력을 인정해줄 만한 사람인가? 가 중요한데 이걸 미리 판별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냐'는 내가 영향을 미치기 쉽지 않아서 그렇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인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건 언제나 도전적인 일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택한 방식은 이게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조정하기 쉬운 구조'를 짜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협업하면서 정보를 수집하며 조정하는 겁니다.

첫 무료 미팅 활용

그 시작은 '첫 무료 미팅'입니다. 일단은 만나봐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들면 첫 미팅은 무료 봉사한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도와줍니다. 동시에 프로젝트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최대한 많이 탐색하고, 내가 상황을 바꿀 여지가 얼마나 있는지도 감지하려고 노력해요.

첫 미팅에서의 정보 탐색 예시로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 공동의 목표: 상대방이 나에게 일을 맡기려는 사람에 가까운가, 공동의 목표를 강조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에 가까운가? 전자면 갑을관계, 후자면 협력관계처럼 된다.
  • 성장 마인드셋: 상대방이 '문제가 한방에 해결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에 공감하는 사람인가? 고정 마인드셋이 아닌 성장 마인드셋을 가지고 있나? 그래야 점진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나아갈 수 있다.
  • 진실성: 상대방이 말과 행동이 전반적으로 합치되는 사람인가? 과거에 상대방과 프로젝트를 해봤던 (특히 재계약을 여러 번 해본) 사람이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 사람과 인터뷰 가능한가? 어렵다면 본인에게 과거 프로젝트 성공/실패담을 듣는다.

작게 시작해서 굴려나가기

첫 미팅 후 프로젝트를 실제로 시작하더라도 바로 큰 계약을 맺지는 않습니다. 문제를 쪼개서, 1차 프로젝트는 짧은 기간동안 진행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기대 수준을 맞추는 기간으로 삼습니다. 이렇게 쪼개서 하면 현금 흐름이 불안정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리스크를 줄이는 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때론 1차만으로 전체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고, 신뢰가 충분히 쌓였고 다음 액션이 필요하겠다 싶으면 프로젝트 기간과 범위를 키워 2차 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서로 안 맞으면 종료할 수도 있고요. (종료에 대해서는 다음 섹션에서 다룹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되도록이면 애자일 선언과 그 이면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AC2에서 배운 EoA(Essence of Agility;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전략)가 아주 유용해요. 사실 이 글 전반, 나아가 제 삶에 이미 EoA가 상당수 녹아있기도 합니다.

출처: https://yozm.wishket.com/magazine/detail/2177/

위 모든 전략이 효과적이지만, 실제 프로젝트 과정에서 제게 가장 유효했던 전략은 '이해관계자와 함께 일하기(Work with stakeholders)' 였어요. 애자일 선언 이면의 원칙에서는 "비즈니스 쪽의 사람들과 개발자들은 프로젝트 전체에 걸쳐 날마다 함께 일해야 한다." 라고 표현되어 있죠.

이해관계자와 함께 일하기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대개 3종류입니다.

  1. 최종 의사결정권자: 프로젝트 계약 여부, 완료 여부, 대금 집행 여부 등을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사람
  2. 실무자: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함께 진행해나가는 사람들. 대개 이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판단을 내림
  3. 사용자: 프로젝트의 직접적 수혜자. 실무자와 겹칠 수도 있음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의 COO로부터 "AI를 이용해 제품 운영팀의 내부 생산성을 높여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고 가정해봅시다. 여기서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COO 또는 COO에게 일임받은 운영팀의 최고관리자일 것이고, 대개 운영팀의 중간관리자들이 '실무자', 운영팀 팀원들이 '사용자'가 되겠죠.

이 상황에서 저는 대략 이런 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나갈 겁니다.

  • COO와의 첫 미팅에서 현재 어떤 문제를 느끼고 있고, 문제가 해결됐을 때 기대하는 변화는 무엇인지 확인
  • 제품 운영팀의 중간관리자와 팀원들을 인터뷰하고 관찰하여 이들이 일상에서 어떤 작업들을 하는지, 병목은 어디에 있는지 확인
  • COO, 관리자, 팀원들과 함께
    •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다시 구체적으로 정의
    •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 구상 (반복 작업을 편하게 해주는 도구 고안, 팀원들의 중요 역량을 키우는 훈련 설계 등)
    • 위 수단을 통해 문제가 해결됐음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 즉 프로젝트의 완료 기준을 정함
    • 실제로 실행 (도구 개발, 훈련 진행 등)
  • COO 및 최고관리자와는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중간관리자와는 매주 정해진 시간에 만나고, 팀원들은 필요할 때 관리자에게 요청해서 만남

사실 제가 작년 초에 맡아 1년 가까이 지속했던 기업 컨설팅에서는 위 항목 중 일부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 좀 낭패를 겪기도 했습니다. 중간관리자들과의 정기 미팅을 잡는 타이밍이 좀 늦었고, 몇차례 연장계약 후 마지막 프로젝트에서 완료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으며, 완료 여부를 결정짓는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교체됐다는 걸 늦게 인지했어요. (그 결정권자와는 합이 맞지 않아 프로젝트를 더 연장하지 않았습니다) 프로젝트가 길어지더라도 계속 깨어있으면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언제 어떻게 마무리할까?

프로젝트가 길어질수록 잘 마무리하는 게 더 중요해지더군요. 앞서 완료 기준을 명확하게 정했다면 좀 더 수월해지지만 그걸 지키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성과가 기대한 만큼 나지 않았는데 계약 종료 시점은 다가올 때면 항상 내적 갈등이 일어나요. 기간 더 늘리자고 할까, 계약 한번 더 연장해서 마무리하자고 할까, 같은 갈등이요. (사실 Work with stakeholder를 잘 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덜 생겼겠지만요)

저도 아직 그리 잘 하진 못하지만, 어찌됐든 명시적으로 끊고 가는 게 장기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느낍니다. 연장계약을 할 때 하더라도 다음 프로젝트가 정말 필요한지, 한다면 그 완료 기준은 뭔지, 혹시 슬슬 조직 내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는 없는지 등을 확인하는 거죠. 어쨌든 저는 '흐지부지한 상태에서 서로 연락하지 않은채 시간만 지나는' 걸 가장 경계합니다.

그리고 확실히 끊고 가는 것과는 별개로, 관계자들과는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그 안에서 뛰어난 역량을 갖췄던 실무자들과는 프로젝트 도중에 일부러 많은 대화를 나눠요. 협력의 씨앗을 심어두는 셈이죠. 다음 기회에 다른 종류의 프로젝트를 함께 할 수도 있고, 이 좁은 세상에서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르니까요.

글 서두에 '회사생활도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라고 언급했었는데, 이 마무리 단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직 전에 최대한 많은 좋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배우고, 서로 축복하며 떠나는 게 적을 만들고 가는 것보다 훨씬 낫죠.

저는 한국신용데이터에서 XL8로 이직하기 직전 한달간, 이직을 핑계삼아 (이전에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분들을 포함해) 10명 넘는 분들과 1:1도 하고 짝 작업도 하며 친해졌습니다. 모두 저의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 되었어요.

참고: 션 엘리스의 그로스 컨설팅 기준

처음 예상과 달리 글이 무척 길어졌네요.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저만의 협업 방식을 갈무리하는 데 도움이 됐던 션 엘리스의 그로스 컨설팅 기준도 참고삼아 붙여넣습니다.

2/ 컨설팅의 성과 측정은 어떻게?

성과가 났을때, ‘이건 니가 한게 아냐’라고 할만한 사람과는 아예 프로젝트를 하지 않음. 이 신뢰가 가장 중요

1번은 무료로 미팅. 이때 서로 맞지 않으면 더 이상 논의 안 함 (bye bye) 물론 흥미로우면 일부러 멀리 출장 가서 만나고 하이킹도 하며, 서로 신뢰를 쌓음.
4/ 대표/C-레벨과의 컨플릭은 없나?

프로젝트 시작후, 서로 프로젝트가 가치 없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그만둠. 남은 생애 동안 몇건이나 더 하겠나? 시간이 아까움. (I want money but I don't need money)

[프리미엄] 프로젝트 참여/속행 여부 판단 기록 템플릿

마지막으로, 프리미엄 구독자 분들을 위해 제가 프로젝트 참여/속행 여부를 판단하는 데 쓰기 시작한 템플릿을 공유합니다. 비슷하게 기록해보고 싶으시면 사본 떠서 활용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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