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으로 자른 걸레에서 배운 4가지 교훈
얼마 전 주말. 아내가 첫째와 함께 외출하고 둘째는 잠든 사이에 오랜만에 매트를 다 들어내고 거실 바닥을 닦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저는 걸레질을 할 때마다 묘한 만족감을 느낍니다. 별것 아닌 이유인데, 걸레 크기가 절반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평범하게 오래된 수건을 그대로 걸레로 썼습니다. 어느날 육아에 허덕이다 한번 '청소연구소'를 이용해봤는데, 그때 오신 아주머니께서 걸레를 반으로 잘라도 되냐고 여쭤보셨어요. 의아했지만 그렇게 하시라고 말씀드렸죠.
이후 제가 직접 걸레질을 하려고 보니 어느새 우리집에는 절반 크기 걸레뿐이더군요. 어쩔 수 없이 이걸로 걸레질을 해봤더니 웬걸, 훠얼씬 편했습니다. 두 번 접어서 사용하던 기존의 걸레는, 바닥을 닦을 때 손을 움직이는대로 함께 움직이는 대신 자꾸 밀리곤 했어요. 한 번만 접어도 되는 새 걸레는 내 손에 딱 맞고 밀리지 않아 바닥 닦기가 매우 수월했습니다. 빨기도 편했고, 더 빨리 말라서 냄새도 덜 났고요.
이 사건에서 저는 크게 네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1. 절반적 사고를 가진다
작업이나 현상을 더 작게 분할하여 (원한다면) 베이비 스텝을 밟을 수 있는 건 전문가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반으로 접는다, 반으로 자른다는 메타포는 아주 강력하며 어디서나 써먹을 수 있죠. 내가 원래 하던 일을 절반의 시간에 할 수 있을까? 이 작업에서 절반만 해도 원래 효과와 유사하게 낼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던져보면서요.
물론 작을수록 무조건 좋은 건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손톱만한 걸레로 거실을 닦기는 어려울테니까요. 항상 오버헤드와 트레이드오프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쨌든 내가 쪼개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는 게 중요해요.
2. 나에게 주어진 디폴트 옵션을 의심한다
왜 불편함이 있었는데도 예전에는 걸레를 잘라볼 생각을 못했을까요? 아마, 그냥 수건이 원래 그 크기여서 그랬던 것 같아요. 수건 크기가 이미 일종의 '최소 단위'로 느껴졌고, 그저 그렇게 쓰는 게 관성이고, 당연했던 거죠.
도구든 정책이든 문화든, 내게 예전에 주어진 걸 무지성으로 받아들여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한번쯤 의심해봅시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으니까요. 그것이 내 현재 상황, 현재 문제에서도 여전히 최적일까요? 다양한 가능성을 찾아서 내 상황에 맞는 크기와 형태를 찾아가는 게 훨씬 더 살아있는 느낌이 들고 유리할 거예요.
3. 남에게 디폴트 옵션을 줄 때 신중을 기한다
내가 의심하는 태도를 가진다고 해서 남들도 알아서 의심하리라는 기대를 할 순 없습니다. 특히 제품 개발할 때는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는 옵션 여러 개 줬으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 다수의 사용자들은 디폴트 옵션을 쓸 것이고, 추가 옵션의 존재는 인지하지도 못할 거예요.
고급 사용자가 더 유연하게 쓸 수 있게 해주는 옵션이 아닌, 대다수 고객에게 최적의 세팅이 무엇인지 몰라서 주는 옵션은 어쩌면 그저 게으름의 산물일지도 모릅니다.
4. 전문가의 도구를 배운다
전문가들은 비전문가보다 훨씬 효과적인 도구를 사용합니다. 바닥 청소에서는 반으로 자른 걸레였고, 디버깅에서는 디버거가 그런 도구겠지요. console.log
나 print
만 찍는 사람과 디버거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의 디버깅 생산성은 천지 차이입니다. 내가 어려워하고 삽질하는 영역에서 고수들은 어떤 도구를 어떻게 쓰는지 잘 관찰해서 따라하면 나의 생산성이 급격히 올라갈 거라고 봅니다.
여담으로, 전문가는 남다른 도구를 쓰는 것 외에도 ‘자신만의 틀을 짜서 세상과 현상을 바라보는’ 패턴 인식 측면에서도 뭔가 다르고, ‘정상 상태와 비정상 상태를 감지하는’ 신호 인식 측면에서도 뭔가 다릅니다. 이러한 전문가의 지식와 행동을 파헤치는 기법이 인지작업 분석(Cognitive Task Analysis, CTA)이죠. 특히 올해부터 제가 주구장창 써먹고 있는 기법이기도 하고, 이걸로 워크숍, 컨설팅, 발표도 다수 진행했습니다. 다음 레벨로 올라가려면 훨씬 더 수련을 많이 해야겠지만, 그래도 평생 써먹을 만한 무언가가 내 안에서 차차 갖춰져나가고 있어서 만족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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