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대화: AI 시대의 자녀교육,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까
올해는 아내와 매일 10분씩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비록 매일, 10분, 눈 맞춤 모두 제대로 지키지는 못하지만, 이전보다 대화가 훨씬 많아져 만족스럽습니다.
오늘은 "아이가 자연스럽게 여러 문화에 노출되게 하는 게 영어교육에도 좋다"는 말을 아내가 누군가의 유튜브에서 봤다고 하더군요. 문화 노출은 삼국지, 성경,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책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했다면서요. 이게 왜 좋을까, 우리 어릴 때는 어땠나,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가는 여은이 교육은 앞으로 어떻게 할까 같은 주제로 뻗어나가면서 각자의 성향과 교육관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나누게 됐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전에 비슷한(?) 주제로 남겼던 글들도 있네요.
- AI 시대의 육아에 대한 단상 - 대 AI 시대, 내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할까요?
- 양육자로서 부모의 역할 -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육아해도 괜찮습니다.
이후의 내용은 저널처럼 쓴 거라서 그대로 반말로 둡니다.
나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10년 뒤의 한국은 지금과 굉장히 다른 곳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저출산 기조로 인해 대학 입시도 전혀 당연하지 여겨지지 않고, AI 통번역으로 인해 영어의 중요성 또한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거라고 본다. 우리가 계속 한국에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영어유치원이나 입시학원처럼 현재 자녀교육에서 보통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에 투자할 마음은 전혀 없다. 아이들이 높은 시험 성적을 통해 자존감을 얻고 싶어한다거나, 친구들이 다 학원에 있어서 가고 싶어한다면 어느정도 존중하겠으나 숙제와 시험의 노예가 되는 건 적극적으로 막을 것이다.
이러한 결정에는 나의 개인적인 성향 또한 영향을 미쳤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내가 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대개 신경쓰지 않는다. 나랑 가깝지 않은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한다면 나랑 상관이 없으니까 신경 끈다. 나랑 가까운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한다면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으리라 여겨 존중한다. 그 이유가 뭘지 혼자 추측하고 판단하려 들진 않는다. 다만, 그 주제가 내게 중요하거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만한 상황이라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배우는 것은 무척 즐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다들 이렇게 한다더라"라는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출처를 묻는 게 습관화되어있다. 반면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주제일 때(그래서 그로 인한 판단과 행동에 큰 하방이 없을 때), 또는 존경하는 지인이 근거 기반으로 말할 때는 곧잘 믿고 시도해보는 편이다. 이는 자녀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대신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아이가 자기 주관을 가지고, 자존감을 지키며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야생'에서 근거와 직관을 모두 활용해 학습하고, 본인의 생각을 논리적인 말과 글로 나타낼 수 있길 바란다. 이러한 인간 본연의 능력은 예전에도 중요했지만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졌다. 창의적 문제 해결, 비판적 사고, 공감과 소통 역량을 키워야 10년, 20년 뒤에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아이가 이렇게 자라기 위해서는 돈, 시간, 에너지를 크게 투자할 용의가 있다.
아내와 나의 교육관은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다름은 좋은 것이다). 아내에게도 여은이와 효은이를 '자존감 지키며 도전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내는 주변의 시선과 흐름에 완전히 의연하지는 않음을 인정한다. 오히려 내가 특이케이스라고 말한다. 아내는 어차피 한국에서 살아갈 거라면 학원도, 학군도, 입시도 어느정도는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이 학습과 성장을 즐기고 도전을 가치 있게 여기는 또래 집단과 함께 지낼 때 크게 성장한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는 학군과 학원이 가치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유명한 학군과 학원이 꼭 그런 분위기를 가졌다는 보장은 없다. 거꾸로 성적과 입시에 미치는 분위기, 숙제를 무조건 다 해가야만 한다는 분위기 같은 것들에 물들까봐 경계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니 아내는 일 바쁜 내가 홈스쿨링 할거냐며, 결국 엄마인 본인이 더 자녀 교육에 맞닿아 있고 신경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좀 반성은 되는데... 이제부터라도 주말에 함께 재밌는 공부 하는 시간 꾸준히 가지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모른다. 당연히 나도 불안할 때가 있고, 당연히 정답은 없다. 그래도 우리는 현명하게 꾸준히 시도하고 조정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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