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언제까지 되나요?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불안해하는 PM과 디자이너에게 대처하는 저의 방법을 간단히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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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올린 글을 좀 더 보충해서 뉴스레터로 보냅니다.

PM → 개발자: "이거 언제까지 되나요?"

개발자로서 PM에게 가장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입니다. 이 얘기가 나왔다는 거 자체가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는 신호일 가능성이 있는데, 저는 이럴 때 대략 3가지 버전으로 답해요.

  • (의욕 없을 때) 짧은 버전: 해봐야 알겠네요.
  • 중간 버전: 아직 추산하기 위한 경험과 정보가 부족합니다. 몇시간쯤 이것저것 해보고 나서 말씀드릴게요.
  • (의욕 넘칠 때) 긴 버전:
    • 1. 말씀하신 X를 완료하기 위해 A, B, C를 해야 한다고 가정하고
    • 2. 사람, 자원, 환경, 선행 문제 등 여러 제약조건이 이러저러하다고 가정할 때
    • 3. 최소 얼마, 최대 얼마, 일반적으로 얼마쯤 걸릴 겁니다.

이렇게 하면 대개 1과 2에 대한 건설적 논의가 시작되더군요. 물론 PM이 처음부터 1과 2를 잘 주면 좋지만 대부분 아니라서, 대부분은 중간 버전으로 말하게 되는 것 같지만요. (관련글: 불확실성과 암묵지를 드러내는 삼점 추정법)

달을 가리키는 사람을 보다: 불확실성과 암묵지를 드러내는 삼점 추정법 (1/2)
3점 추정법을 이용해 추정하는 사람의 컨텍스트를 드러내고 불확실성을 인식할 수 있다. 인지된 불확실성은 불안이 아닌 그저 학습과 실험의 대상이다. 이 과정에서 조직은 점점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디자이너 → 개발자: "이것도 혹시 가능한가요?"

그리고 디자이너에게는 (특히 인터랙션 UX 관련하여) "이것도 혹시 가능한가요?"를 참 여러 번 들었습니다. 이것 또한 어떠한 불확실성, 불안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디자이너 분들은 대개 '일단 최대한 이쁘게 만들어봤는데 현실적으로 구현이 되는지 모르겠다' 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더군요.

저는 항상 "구현 불가능한 건 거의 없고 시간과 비용, 즉 우선순위의 문제일 뿐"이라고 답했는데요. 자주 말하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본인이 물어봐놓고도 제 답을 예상하시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대화하고 나면 ‘이 기능에서 좋은 유저 경험이란 무엇인가‘ 같은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 게 좋았어요. 결과적으로는 우선순위가 높아지지 못해 컷된 것도 많았지만, 그래도 (PM 몰래) 조금 시도해보고 결과를 공유해드리면 아주 신나하셨죠.

근데 때론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부려본 욕심이 고객에게 대호평을 받기도 했어요. 하드 스킬을 크게 성장시켜주기도 했고요. 역시, 정답은 없습니다.

함부로 추산하지 않기

조금 다른 얘긴데, 저는 다른 사람에게 (개발자에게든 PM에게든 디자이너에게든) "이건 쉽죠?" "이건 어렵겠죠?" 같은 말을 쉽게 꺼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 사람이 해야 할 일의 공수나 난이도에 대해 함부로 추산하지 않는 거죠.

역지사지로 생각해봐서 그런 건데요. 저는 PM이 가벼운 기능 하나 추가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여러 맥락이 섞여있어서 구현이 어렵다거나, 디자이너가 '이건 구현하기 어렵겠지' 싶어서 다른 기능으로 바꿔서 제안했는데 알고 보니 원래 생각했던 게 오히려 더 구현하기 쉬웠다거나... 같은 경험을 자주 했거든요. 상대방의 전문성을 신뢰하고, 그 사람의 일은 그 사람에게 맡기되 충분한 컨텍스트를 주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